17살 노령견을 키우는 것은 마음을 많이 쏟는 일 같아요.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꾸준히 신경 쓰고 알아차려야 하니까요. 지난주에는 송이 목욕을 시키다 말고 발톱을 만져보니 엄지 발톱이 자라면서 구부러져서 살갗을 찌르기 일보직전. 부랴부랴 강아지 발톱깎이를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숨은 건지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가뜩이나 강아지 발톱 깎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발톱깎이가 없어진 게 다행인 건가 싶어서 송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발톱을 깎아주고 왔어요. 이렇게 사소한 발톱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마음이 쓰이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강아지를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또 생각하게 돼요.
어제는 날이 너무 좋아서 송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어요.
옛날처럼 자동차 태우고 멀리멀리 계곡 같은 곳에 가서 수영도 시켜주고 싶고, 애견 전용 카페에 가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뛰어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기처럼 귀여워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송이의 신체 나이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었어요. 집에 가면 잠만 쿨쿨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람이 집에 와도 문 여닫는 소리와 초인종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져 갑니다.
멀리 가지 못하고 숨이 차서 헥헥거리는 우리 송이를 데리고 평소 산책 다니는 곳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놀러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생한테 생일선물로 송이 유모차를 사달라고 해서,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조립하고 송이를 태우고 나들이를 갈 생각에 집에서 부랴부랴 김밥도 쌌답니다. 사실, 제 생일 선물 사달라고 했을 때 시큰둥 했던 동생이, 송이 유모차 사달라니까 바로 주문 해주더라구요. 치사해라.
송이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우리 초코는 일찍이 유모차가 있었는데, 송이는 초코의 유모차를 절대 타지 않으려고 했어요. 뭔가 자기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였는지 그 머릿속을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송이만 탈 수 있는 송이를 위한 유모차가 생겨서 오히려 제가 더 기뻤답니다.
아침부터 쿨쿨 자던 송이는 제가 분주하게 김밥을 싸고 배변 봉투와 물, 커피를 챙기면서 부산을 떠니까 뭔가 눈치를 채고 벌써부터 기분이 신이 났더라구요. 그래서 송이를 데리고 힘차게 출발~ 처음에는 유모차를 타고는 무서워서 벌벌 떨더니 금새 적응해서 신났다고 바깥 구경도 열심히 하더라구요.
사람이 없는 꽃밭 길목으로 가니 신나서 이곳 저곳 냄새 맡고 행복해하는 송이를 보니까 저도 너무 행복했어요. 어제 날씨가 화창 했지만 조금은 뜨거운 햇볕에 송이가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송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송이 움직임을 따라 열심히 눈을 굴렸어요.
지친 기색을 보이는 송이를 무릎에 앉히고 저도 집에서 싸온 김밥 몇 개를 먹어봅니다. 우아하게 돗자리를 펴고 송이와 함께 누워서 하늘도 보려고 했는데, 김밥도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보려 했는데, 강아지와의 산책은 생각처럼 그렇게 우아한 건 아니라는 걸 잠시 망각 했나 봅니다.
숨을 헐떡이는 송이의 물을 챙겨주고 후다닥 김밥을 먹어 없애고 나서야 조금은 한숨 돌릴 수 있었어요.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들어가고 싶었는데, 너무 더워서 송이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유모차 인증샷을 찍어서 동생에게 보내주고 송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집으로 갔어요. 처음에 낯선 유모차에 발발 떨었던 모습과는 달리 마치 원래 자기 것이었던 냥 유모차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얌전히 앉아서 주변을 구경하는 송이를 보면서 참 대견하고 고마웠어요.
이제 유모차 생긴 송이 데리고 부지런히 예쁜 곳 데리고 다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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